지구별 경영을 꿈꾸며: 커이커이의 서재

리서치/4차산업혁명 리포트

위기 극복과 성공 신화의 혁신적인 경영 바이블 <성과를 향한 도전, 피터 드러커>

커이커이  2020. 11. 17. 02:53

지식 노동자는 성과를 올려야만 한다.
그리고 성과를 올리는 능력은 반드시 습득되어야 한다!

 

『 성과를 향한 도전 (1966) 』

 

 

경영학의 아버지라고도 꼽히는 '피터 드러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3P 바인더를 쓰기 시작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피터 드러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개인의 시간과 성과를 관리하는데 있어서 강력한 툴인 3P 바인더, 이 도구의 바탕이 된 핵심 원리를 제공한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피터 드러커라고 했다. 그래서 3P 바인더 강의를 듣는 중에도 끊임없이 반복되어 인용된 피터 드러커의 책이 무엇인지 늘 궁금하였고, 결국엔 서점에 가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결론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탁월한 책이란 것이었다.

원저 'The Effective Executive'은 미국에서는 심지어 1966년에 저술된 오래된 책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여러 편의 개정판을 통해 책 내용이 현대의 경영 사례에 맞게 조금씩은 개량되어 왔겠지만, 이 책에서 강조하는 '시간에 대한 철저한 관리', '성과(기여)에 대한 집중', '경계조건에 초점을 둔 의사결정'의 원칙은, 컴퓨터의 도입을 넘어 인공지능 경영의 시대에 도달한 현재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항들이라 생각되었다. 인상 깊게도, 피터 드러커는 지식 노동자 그 자체를 '경영자'로 보았다. 물론, 모든 지식 노동자가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조직의 활동과 업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하면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들을 일컫어 경영자라고 말했다.

비록 소규모 사업장이지만,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나는 100퍼센트 동의하는 말이다. 우리 회사는 대개 하루 4시간씩 두 개의 연구업무를 배정, 하루 8시간의 근무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늘 보고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는 개별 프로젝트마다 개별 예산이 따로 있고, (비록 월급은 연봉협상 당시 고정된 연봉에 기초하여 지급되지만) 실제로는 내가 개별 프로젝트에 '기여'한 시간에 근거해서 월급이 지불되는 것이기 때문에, 막상 그날 컴퓨터 앞에 8시간 앉아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8시간을 내가 실제로 일한 프로젝트와 일치시킬 수 없다면, 더 나아가 그 8시간을 통해 생산된 '산출물(output)'을 내놓을 수 없다면, 이론적으로는 그날치 급료는 받지 않아야만 한다. 때문에 어떻게든지 그 날 안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고, 때때로 다소 어려운 연구과제를 배정 받을 때에는 (비)자발적 잔업 및 야근으로 졸곧 이어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매일매일이 대학교 레포트 제출 마감일과 같은 (...)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식 노동자에게 있어서 '성과'만큼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회사 사무실에 8시간 앉아 있었단 것이 그날치 성과가 될 수 없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시간만 때우면 되는 일개 아르바이트 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머리 속에 있는 전문지식이 저절로 회사의 수익이 되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 지식이 산출물의 형태로 세상 밖에 나왔을 때에만 다른 이들에게 유용한 가치를 가지게 되고, 비로소 그 때에만 회사가 고객에게 돈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내가 가진 지식이 어떤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내가 써낸 보고서가 어떻게 하면 '유용하게' 쓰여질 수 있을지, 그 '유용성'을 고민해야 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사실, 이러한 고민들은, 내가 프리랜서였거나 개인사업자였다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고민하고 있을 주제이지 않았을까? 나 자신이라는 '상품'을 찾는 수요가 없다면, 그 즉시 나의 수입이 제로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회사라는 조직의 울타리 안에 들어서고 나면,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이 '성과'에 대한 고민인 것 같다. 그날 그날, 상사의 요구만 어떻게든 잘 무마해내면,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월급날에 급료가 따박따박 들어오기 때문이다. 당연히 창의성이 발휘될 기회도 없고, 조직의 업적에 대한 탁월한 기여에 대한 특별한 동기부여도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피터 드러커는 지식 노동자는 성과를 올려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아니, 성과를 올리는 법을 습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들을 -- 내가 가장 성과를 잘 낼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 이 일을 했을 때 기대되는 성과는 무엇인가, 성과를 더 잘 내기 위해서 필요한 변화는 무엇인가 -- 하는 지식 노동자야말로, 비로소 '경영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도 직장생활 3년차에 들어서면서야 일상의 업무 속에서 조금씩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된다. 내가 쓴 글이 과연 고객의 핵심 '필요(need)'에 대한 답이 되고 있나? 내가 지식전달을 위해 사용하는 수단(format)이 과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가? (블로그를 그만 두고 유투브로 갈아타야 하나)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덜 들이고서 이 과제를 마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성과에 대한 집착은 바로 조직과 나 자신의 업무의 효율성에 대한 집착, 즉 성공에 대한 집착이란 생각이 든다.

몇 개월 전에 읽고 나서, 이번에 리뷰를 쓰기 위해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너무나도 탁월한 메시지라고 생각해서, 메모까지 해두었던 원리들이었는데... 그 사이에 또 다시 싹 다 까먹고 전혀 고민하지 않고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첫째도 실천, 둘째도 실천이구나 싶다.

 

적어도 다시 한번,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겠노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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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영자, 즉 모든 일을 끝까지 완수해야 할 지위에 있는 사람의 과제는 성과를 올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업무는 성과를 올려야만 의미가 있다.

# 2

경영자가 성과를 올리기 위해 체득해야 할 습관적인 능력은 다섯 가지다.

1. 어디에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토막 시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2. 외부 세계에 대한 기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일의 과정이 아닌, 성과에 정력을 쏟는 것이다. 일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일에 관한 방법이나 의견 등에서 출발해서도 안된다. '기대되는 성과는 무엇인가'를 자문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한다.

3. 강점을 기준으로 잡는 것이다. 그리고 상사나 동료, 부하도 그들의 강점을 중심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각각의 상황하에서의 강점, 즉 할 수 있는 것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이는 약점을 기반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할 수 없는 것에서 출발해서는 안된다.

4. 두드러지게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영역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다. 최우선 순위를 결정하고 그 결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강제해야 한다. 이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업무를 하는 것을 뜻한다. 절대로 두 번째로 돌려야 할 것을 먼저 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되면 어떤 일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5. 마지막으로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의사 결정이란 수순의 문제이다. 그리고 성과를 올리는 의사 결정은 과거의 사실에 대한 합의가 아닌, 미래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에 기초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또, 다수의 의사 결정을 신속하게 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해야 할 것은 기본적인 의사 결정이다. 각각의 전술이 아닌 하나의 옳은 전략에 관한 의사 결정이다.

# 3

기업이나 병원, 정부 기관, 노조, 대학, 군대 그 어느 조직에서든 경영자는 항상 해야 할 업무를 완수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즉, 성과를 올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위에 있는 사람 중에서 큰 성과를 올리는 사람은 극히 적다. 그들이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상상력도 풍부하다. 지식 수준도 높다. 그러나 지적 능력이나 상상력, 지식 등과 성과를 올리는 것은 거의 관계가 없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종종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대체로 그들은 지적인 능력이 그대로 성과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지적인 능력이 체계적인 작업을 통해서만 성과에 연결된다는 사실을 모르고있는 것이다.

반대로 모든 조직에서 착실하게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종종 창조성과 혼동하는 열기나 번잡함 속에서 우왕 좌왕하고 있을 때, 이들은 우화에 나오는 거북이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먼저 목표에 도달한다. 지적 능력이나 상상력, 지식은 어디까지나 기초적인 자질이다. 그 더한 자질을 성과에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성과를 올리기 위한 능력이 필요하다.

# 4

오늘날에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이 사회의 중심적인 존재다. 현대 사회는 조직 사회다. 그러한 대조직의 중심적인 존재는 근력과 숙련 기능이 아닌, 두뇌를 써서 일을 하는 지식 노동자다. 근력과 숙련이 아닌 지식과 이론을 사용하게끔 학교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많은 조직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은 조직 목적에 기여하고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성과를 올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아니 가볍게 취급 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산업 공학이나 품질 관리 등 육체 노동자의 일을 측정, 평가하기 위한 시스템은 지식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없다. 불량품을 생산하기 위해 설계도를 대량 제작하는 엔지니어링 부서만큼 어리석고 비생산적인 부분은 없을 것이다. 지식 노동자가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적절하고 목표에 걸맞는 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일은 육체 노동을 위해 개발된 방법으로는 측정할 수 없다.

지식 노동자를 직접, 그리고 세밀하게 감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작 옆에서 도와주는 정도가 가능한 수준일 것이다. 지식 노동자는 스스로를 감독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일을 업적에 연결시키고, 성과를 올리기 위해 스스로를 감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

# 5

사실 지식 노동자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지식 노동자의 고유 한 일이다. 생각 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다.

또한 지식 노동자에 대한 동기 부여는 자신이 성과를 올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 자신이 업무를 완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일 성과를 올릴 수 없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공헌에 대한 의욕은 감퇴하고, 9시부터 5시까지 수동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는 존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지식 노동자는 독립적으로 떼어 놓았을 때 그 어떤 직접적인 성과물도 생산하지 못한다. 하수구나 구두, 부품 등과 같은 물적 생산물은 만들어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식, 아이디어, 정보를 만들어 낸다.

그런 지식 노동자의 생산물은 그 자체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 다른 사람, 다른 지식 노동자가 그것을 이용해 새로운 생산물로 변화시켜야 비로소 현실 세계의 물건으로서 도움을 준다. 아무리 위대한 지혜가 있어도 행동이나 행동 양식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데이터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지식 노동자에게는 육체 노동자가 할 필요 없는 행위가 필요하다. 자신의 성과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 그것이다. 구두 한 컬레와 같은 생산물 자체의 효용을 기대할 수는 없다.

# 6

지식 노동자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같은 고도의 선진국 사회가 국제 경쟁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생산 요소이다. 이 점은 특히 미국에서 타당하다고 말할 수있다. 미국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유일한 자원은 교육이다. 미국의 교육도 그 이상에는 멀다. 그러나 다른 가난한 나라보다는 훨씬 이상에 가깝다.

교육은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투자이다. 자연 과학의 박사급에는 한 사람 당 10만 달러에서 20만 달러의 사회 투자가 필요하다. 전문적인 자격 없이 졸업하는 대학생조차 5만 달러 이상의 사회 투자를 필요로 한다. 그와 같은 재원은 아주 풍요로운 사회가 아니면 조달하기 어렵다.

따라서 교육은,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만 확보할 수 있다면 가장 풍요로운 국가인 미국이 가장 우위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여기서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이란 해야할 일을 해 내는 능력을 말한다.

# 7

성과를 올려야 만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오늘날의 조직에서 자신의 지식이나 지위 때문에 조직의 활동과 업적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할 지식 노동자는, 이미 경영자[The Exeautive]이다.

조직 활동과 업적이란, 기업의 경우 신제품을 내놓는 것이고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이다. 병원의 경우라면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직의 그와 같은 능력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하는 경영자는 스스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그는 스스로의 기여 수준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는 지식을 갖고 있음으로써 조직 내 다른 누구보다도 적절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의사 결정은 무시될지도 모른다. 좌천되거나 해고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을 담당하고 있는 한, 그 일의 목표나 기준, 그리고 공헌은 그에게 달려있다.

# 8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전문 분야에서 탁월한 인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즉, 그들이 가진 능력의 성과를 증대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자원 투입을 증대시키지 않는다면 자원 산출을 증대시켜야한다. 그리고 성과를 증대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능력이나 지식이라는 자원으로부터 보다 많이, 그리고 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수단이다.

성과를 증대시키는 능력은 조직의 필요라는 면에서 볼 때 중요하다. 그리고 동시에 개인의 자기 실현과 업적의 필요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역시 중요하다.

... 지식 노동자가 공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그들은 그 같은 과정을 거쳐 비로소 조직에 공헌할 수 있게 된다. 지식 노동자는 물건을 생산하지 않는다. 아이디어나 정보, 개념을 생산한다. 지식 노동자는 대부분 전문가이다. 사실 그는 보통 한 가지만을 대단히 잘 수행할 수 있을 때, 즉 전문화되었을 때 큰 성과를 올린다.

그러나 전문 지식은 그만큼 단편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문가의 산출물은 다른 전문가의 산출물과 통합되어야 비로소 성과가 될 수 있다.

우리들이 해야 될 일은 이것 저것 다 하는 사람을 길러 내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가 그 자신과 전문 지식을 활용해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 자신의 단편적인 생산물을 보다 생산적인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알리고, 무엇을 이해시킬 것인가에 대해 전문가 자신이 철저하게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 9

· 시간을 기록한다.

· 시간을 관리한다.

· 시간을 하나의 묶음으로 모은다.

성과를 올리는 사람은 시간이 제약 요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사업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이 성과의 한계를 규정한다. 성과 달성 과정에서 그 자원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특한 자원이다. 여러 가지 자원 중, 예를 들면 금은 상당히 풍부하다. 덧붙여 말하면 우리들은 경제 성장이나 경제 활동에 대한 제약 요인이 자금 공급이 아니라 자금 수요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또 하나의 제약적 자원으로 인적 자원이 있는데, 이것은 충분한 양을 모으는 것은 무리일지라도, 하여튼 고용이라는 형태로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빌리거나, 고용하거나, 사거나 해서 손에 넣을 수 없다. 시간의 공급은 경직되어 있다. 아무리 수요가 많아도 공급은 증가하지 않는다. 시간에는 가격도 없다. 한계 효용 곡선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간단하게 소멸된다. 저축도 할 수 없다. 어제의 시간은 영원히 과거로 사라지고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시간은 항상 부족한 상태다.

시간은 대체할 수도 없다. 다른 자원이라면 어느 정도 한계가 있라도 대체할 수있다. 예를 들면 알루미늄 대신에 동을 쓸 수 있다! 인간 노동 대신에 자본을, 육체 노동을 지식으로 대체한다. 그러나 시간은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은 모든 분야에서 필요하다. 시간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조건이다. 모든 업무는 시간 안에서 수행되고, 시간을 소비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 대체할 수없는 필수 불가결한 자원을 당연한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 10

이것은 경영자가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경우의 시간 사용법에서도 말할 수 있다. 타인은 그가 소유한 시간의 소비자다. 그리고 다수는 그의 시간 낭비자다. 그러나 타인을 위해 수분을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비생산적이다.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려면 꽤 큰 한 덩어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계획이나 방향 설정, 업무에 대해 부하와 15분간 얘기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단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마음 속으로 명심하도록 만들고, 상대에게 영향을 주고 싶다면 최저 한 시간, 많은 경우 그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인간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으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지식 노동자와의 관계에서는 특히 시간이 필요하다.

상사나 부하 사이에 계급이나 권위가 장벽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지 반대로 장애로 존재하기 때문인지, 또는 단순히 사무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때문인지, 이유야 어떻든 지식 노동자는 상사나 동료에게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게다가 지식 노동은 육체 노동처럼 평가 측정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잘하고 있는지 등의 내용을 간단한 말 몇 마디로 전달하기는 불가능하다...

지식 노동자는 스스로가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따라서 무엇을, 왜 기대하고 있는지를 이해시켜야만 한다.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을 활용해야 할 사람들의 업무에 대해서도 이해시켜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정보와 대화, 지도가 필요하다. 여기에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상사뿐만 아니라 동료도 지식 노동자를 위해서 시간을 할애해 주어야만 한다.

# 11

지식 노동자가 다소라도 성과나 업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조직 전체의 성과나 업적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은 지식 노동자 자신도 눈을 업무로부터 성과로, 전문 분야로부터 외부 세계, 즉 성과가 존재하는 유일한 장소인 외부 세계로 돌리기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뜻한다.

지식 노동자가 성과를 올리고 있는 조직에서는, 조직의 최고 경영자가 정기적으로 시간을 할애해 때로는 신입 사원을 포함한 지식 노동자와 만나 '조직의 최고 경영자로서 당신의 업무에 대해서 무엇을 알아야만 하는가,' '이 조직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또한 '우리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위험은 어디에 있는가', '조직에 관해 나에게 듣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기업이나 정부 기관, 연구소, 군의 참모 조직, 그 어느 곳에서도 여유 있는 대화가 특히 필요하다. 그와 같은 대화가없는 경우에 지식 노동자는 열의를 잃고 무사 안일주의에 빠져 버린다. 자신의 에너지를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쏟는다든지, 조직의 기회나 필요와는 아무 관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와 같은 대화는 여유있게, 서두르지 않고 해야만 하기 때문에 대단히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대화에는 여유가 있다고 느껴야만 하다. 그것이 결국은 지름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토막토막 끊어지지 않는 한 뭉텅이의 시간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 12

또 한 가지 꽤 사용되고 있는 방법은 매일 아침 자기 집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S. 칼슨에 의하면 대단히 업무를 잘하는 한 경영자는 매일 아침 출근 전 1시간 반 정도, 전화가 없는 서재에서 일을한다고 한다. 시간에 맞추어 출근하기 위해서는 꽤 빨리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밤에 일을 갖고 들어와서, 저녁 식사 후에 3시간 일하는 일반적인 방법보다도 훨씬 낫다. 저녁 식사 후에 대개 사람은 업무를 잘하기에 너무 지쳐있다. 특히 중년 이후에는 빨리 자고 빨리 일어나는 편이 컨디션에 좋다. 게다가 집에서 밤 늦게 일을 하는 것을 일반화하는 것 자체가 이 방법의 최대 결함이다. 낮 시간 관리에 성실하지 못한데 대한 좋은 변명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 13

"경영 관리자들이 정확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장래에 필요로 하는 제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장이 장래에 해야 할 의사 결정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고한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노력에 초점을 맞추거나 아래를 향한 권한을 중시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부하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아무리 젊은 신입 사원이라도 공헌에 초점을 맞추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최고 경영자다. 조직 전체의 업적에 공헌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 공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전문 분야나 한정된 기능 혹은 부문이 아닌 조직 전체의 업적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성과가 존재하는 유일한 장소인 외부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즉, 각각의 전문 분야, 기능, 부문과 조직 전체, 조직의 목적과의 관계에서 철저하게 생각해야만한다. 경제적인 재화, 정부 시책, 의료 서비스 등 조직이 만들어내는 산출물의 궁극적인 목적인 고객이나 환자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업무나 업무 처리 방식이 실질적으로 변화한다.

# 14

미 정부의 한 대규모 연구소의 출판 국장이 퇴직했다. 그는 연구소가 설립된 1930년대부터 일하고 있었다. 과학자도 아니었고 훈련받은 문장가도 아니었다. 일부에서는 그가 발행한 정기 간행물은 전문적인 것이 아니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가 퇴직한 후 후임으로 일류 저널리스트가 기용되었다. 그 덕분에 간행물은 고도의 세련미가 흘렀다. 그러나 주요한 독자였던 외부 과학자들은 정기 간행물을 읽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오랫동안 협력 관계에 있었던 외부의 유명한 과학자가 연구소장에게 "전임 국장은 우리들을 위해서 글을 썼다. 그러나 새 국장은 우리들을 향해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전임 국장은 '이 연구소가 성과를 올리기 위해 자신은 어떻게 공헌해야 하는가'를 자문하고 있었다. '외부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이 연구소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고, 함께 일할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그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는 편집의 초점을 연구소의 중요한 문제, 결정, 논쟁으로 좁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소장과 충돌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들의 출판물의 가치는 우리 마음에 드느냐 들지 않느냐가 아니다. 그것을 읽고 몇 사람의 젊은 과학자가 취직 신청을 해올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유능한지이다"라고 주장했다.

'어떠한 공헌이 가능한가'를 자문하는 것은 자기 직무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같이 생각한다면 많은 직무에 대해 우수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그 엄청난 기여의 가능성에서 본다면 극히 작은 실적을 올리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15

미국의 어느 대규모 은행의 증권 대행부는 안정된 이익을 올리지만 단순한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 부서는 수수료를 받고 회사 주식의 명부 교체를 대행하고 있었다. 주주 명부 관리나 배당금의 발송 등 잡다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상상력 없이 정밀함이나 능률을 필요로 하는 업무였다.

어느 날 이 부문을 담당하고 있던 부 대표 이사가 "증권 대행부는 어떠한 기여가 가능 할까?" 하고 자문할 때까지는 그와 같은 부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증권 대행 업무가 거래 회사의 재무 담당 임원과 직접 접촉할 기회를 주고있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게다가 그 회사의 재무 담당 임원은 예금, 대출, 투자, 연금 관리 등 모든 은행 서비스에 대한 구매자로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입장에 있었다.

물론 증권 대행 업무는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 사람이 파악했듯이, 여기서는 은행의 모든 서비스에 관한 영업 부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이 은행의 증권 대행부는 새로운 부 대표 이사의 휘하에서 꽤 능률을 올리는 사무실 집단을 넘어서 은행 전체의 대단히 강력한 영업 세력이 되었다.

어떠한 공헌이 가능한지 자문하지 않는다면 목표를 철저히 설정하기는커녕 잘못된 목표를 설정하기 쉽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설정해야 할 공헌을 좁게 설정할 우려가 있다.

# 16

이 두 개의 예로부터도 명백하게 알 수 있듯이, 기여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모든 조직은 세 가지 영역에 걸친 성과를 필요로 한다. 즉, 직접적인 성과의 영역, 가치 창조와 가치 재확인의 영역, 내일을 위한 인재 육성의 영역의 세 가지이다.

이 세 가지 영역 전부에서 성과를 올리지 않으면 조직은 부패하고 죽는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영역에 걸친 공헌을 모든 업무에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인간은 부가된 요구 수준에 적응한다. 기여에 조준을 맞춘 경험자는 함께 일하는 모든 인간의 관점과 수준을 높이게 된다.

어떤 신임 병원장이 최초의 회의를 열면서, 한 가지 어려운 문제에 대해 전원이 만족할 수 있는 해답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때 출석자 중 한 사람이 "이것이 브라이언 간호사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즉시 다시 논의가 시작되고 훨씬 야심적이고 완전히 새로운 해결책이 모아질 때까지 논의가 계속됐다.

그 병원장은 브라이언 간호사가 고참 간호사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그녀는 특별히 뛰어난 간호사도 아니었고 간호부장을 맡았던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담당 병동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결정될 때마다 반드시 "그것이 환자에게 가장 좋은 것일까요?"라고 묻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실 브라이언 간호사의 병동 환자는 회복도 빨랐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병원 전체에 '브라이언 간호사의 원칙'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병원의 누군가가 늘 이 병원의 목적에 비추어 이것이 최선의 공헌인가를 묻게끔 되었던 것이다.

브라이언 간호사가 은퇴하고 적어도 10 년이 흘렀다. 그렇지만 그녀가 설정한 기준은 그대로 남아 그녀보다도 교육이나 지위가 한 차원 위인 사람들에게까지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공헌한다는 것은 책임감을 갖고, 성과를 올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 17

조직에서 일하는 경영자는 인간 관계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좋은 인간 관계를 맺어 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업무나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을 때 공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만 좋은 인간 관계를 맺을 수있다. 공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들의 인간 관계는 생산적이 된다. 그리고 생산적이라는 것은 좋은 인간 관계의 유일한 정의다.

업무나 과제에 초점을 맞춘 관계에서 하등의 성과도 없다면 따뜻한 감정이나 이야기도 무의미하다. 왜곡된 관계를 맺어 가는 데 지나지 않는다. 거꾸로 관계자 전원에게 성과를 가져다 주는 인간 관계라면 때로는 예의에 어긋난 말조차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상사가 부하를 향해 무엇인가 말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부하가 잘못 알아 들을 위험도 커진다. 부하는 상사가 말하는 내용이 아닌 자신이 듣고 싶다고 기대하고 있는 것을 듣기 때문이다.

자신의 업무에 스스로 공헌하는 경영자는 부하들도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요구해야 한다. 부하에 대해 "조직, 그리고 상사인 나는 당신에게 어떠한 기여에 따르는 책임을 주어야 하는가? 당신에게 기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할 수있는 길은 무엇인가?"를 질문해야하고, 이렇게 해서 비로소 의사 소통이 가능하게 된다. 즉, 우선 부하가 자신은 어떠한 종류의 공헌을 기대받고 있는지를 충분하게 생각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된 후에야 비로소 상사는 부하가 생각하고 있는 공헌의 유효성을 판단할 권한과 책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겪은 바로는 부하가 설정한 목표는 거의 항상 상사가 생각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바꿔 말한다면 부하는 현실을 상사와 완전히 다르게 보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유능할수록, 또 나아가 책임을 지려 할수록 현실이나 객관적인 기회, 욕구에 관한 견해는 상사나 조직과 달라진다. 부하의 사고와 상사의 기대 차이는 꽤 크다.

# 18

공헌에 초점을 맞춘다면 부하, 동료, 상사를 불문하고 다른 사람의 자기 개발을 촉발한다. 또 사람에 따른 기준이 아닌 업무의 필요성에 근거한 기준을 설정하게 된다. 즉, 탁월성의 요구이다. 강한 의욕도 이상적인 목표도 대단히 영향력 있는 업무의 요구이다.

우리들은 자기 개발에 대해 극히 조금밖에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하나만은 알고 있다. 인간, 특히 지식 노동자는 스스로에게 부가된 요구에 대응해 성장한다. 자기가 달성해야 할 것에 따라서 성장한다. 자신이 조금밖에 요구받지 않으면 성장은 없다. 엄청나게 많은 것을 요구받으면 아무 것도 달성하지 못한 인간도 똑같은 정도의 노력으로 거대하게 성장할 수 있다.

# 19

회의, 보고회, 설명회는 경영자의 업무 과정에서 전형적인 환경으로 주어진다. 그것은 그들의 독특한 일상적인 도구이다. 게다가 그런 것들은 아무리 시간을 분석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통제해도 또다시 방대한 시간을 요구한다.

따라서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회의나 보고회, 설명회로부터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를 알고,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왜 이 회의를 열었는가', '결정하고 싶은 것은 정보를 주는 것인가, 확인하는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또한 회의를 소집하기 전에, 보고회를 열기 전에, 설명회를 준비하기 전에 각각의 목적에 대해 철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회의가 자신의 공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회의를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회의 맨 첫머리에 회의 목적과 부가된 의미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회의를 그 목적에 따라 진행시켜야 한다. 특정한 목적이 있는 회의를 누구나 마음내키는 대로 훌륭한 아이디어를 말하는 자유 토론장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또는 사고와 검토를 위한 회의를 단순한 보고의 장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이 때는 출석자 전원을 자극해 전원이 도전하게 해야 한다. 회의 끝에는 맨 첫머리의 설명으로 돌아가 결론을 회의 개최 의도와 연관시켜야 한다.

회의를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한 규칙은 그 밖에 또 있다. 예를 들면 회의에서 사회를 보면서 중요한 발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가능하다. 반대로 토의에 참가해서 발언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양쪽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은 안 된다. 그런데 이 규칙은 너무도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회의 첫머리부터 공헌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 20

약점이 없는 강점만 가진 인간, 완전한 인간, 완성된 인간을 찾아낸다 해도 그들은 결국 평범한 조직을 만들고 만다.

커다란 강점을 가진 인간은 대부분 큰 약점을 갖고 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모든 분야에서 강점만을 가진 인간은 없다. 인간의 지식, 경험, 능력의 전 영역에서 본다면 위대한 천재도 낙제생도 있다. 나무랄 데 없는 인간은 있을 수 없다. 처음부터 전혀 나무랄 것이 없는 것도 문제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할 수 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약점을 피하려 드는 경영자는 그 자신이 약한 인간이다. 아마 그는 강한 인간에게 위협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하가 강점을 갖고 있고 성과를 올리기 때문에 고민하는 경영자는 한 사람도 없다.

미국의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선택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일하게 하는 방법을 아는 남자, 여기 잠들다'라는 말 만큼 큰 자랑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경영자를 위한 처방이다.

물론 카네기의 부하들이 우수했던 것은 그가 그들의 강점을 찾아내고 그들의 강점을 업무에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그 철강업 경영자들은 특정 분야에서, 특정 업무에서 탁월했다. 그러나 가장 성과를 올렸던 경영자는 다름 아닌 카네기였다.

# 21

1942년 마샬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유능한 장교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부적격자는 없었고 2류 장교는 극히 소수였다. 이와 같이 군 역사상 최고라 해야 할 교육상 위업은 마샬이라는, 몽고메리나 드골, 맥아더 류의(인간적 흡입렵이나 자신감이라는 지휘자 특유의) 속성을 전혀 갖추지 않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가 갖고 있던 것은 원칙이었다. 그는 항상 '이 남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문제시했다. 그리고 그 무엇인가가 가능하다면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지는 2차적인 문제로 여겼다. 예를 들면 마샬은 몇 번이나 조지 패튼을 위로했다. 패튼이라는 야심적이고 자신만만한 전시용 장군이, 평상시 참모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인한 어떤 불리함도 당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마샬 자신은 패튼과 같은 화려한 군인 스타일을 싫어하고 있었다.

마샬은 강점 발휘에 제약을 주는 약점만 신경을 썼다. 그와 같은 약점조차도 일과 기회를 줌으로써 극복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마샬은 아이젠하워 소위가 체계적인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30년대 중반 경에 일부러 전략 부문 업무를 맡겼다. 그 결과 아이젠하워가 전략가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전략에 대한 존경과 이해력을 체득했다. 그럼으로써 팀 편성이나 전술에 관한 그의 커다란 장점이 가졌던 제약이 없어졌다.

마샬은 아무리 현재의 직무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더라도 새로운 직무에 가장 적합하다면 주저 없이 그 사람을 뽑았다. 누군가 지위가 높은 사람이 그 '꼭 필요한 사람'을 끌어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하면 "이 이동은 직무를 위한 것이고 본인과 군을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 마샬은 인사는 결국 도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인사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그 도박은 적어도 합리적일 수 있었다.

# 22

인간 세계에서 리더와 보통의 사람들과의 거리는 일정하다. 리더의 업무 수준을 높이면 보통 사람의 업무 수준도 높아진다. 집단 전체의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리더 한 사람의 성적을 올리기가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리더의 지위, 즉 표준을 설정하고 기준을 정하는 지위에는 걸출한 기준을 설정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닌 인간을 올려 놓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그 인간이 가진 최대의 강점에 초점을 맞추고, 그 강점의 발휘에 방해되지 않는 한 약점은 관계 없는 것으로 간주해 무시해야 한다.

경영자의 임무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경영자의 임무는 성서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처럼 개인이 가진 모든 강점, 활력, 의욕을 동원함으로써 전체의 능력을 증가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 23

성과를 올리기 위한 비결을 하나만 든다면 그것은 집중이다. 성과를 올리는 경영자는 가장 중요한 것에서 시작하고 한 번에 하나만을 수행한다. 집중이 필요한 것은 경영자 직무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로부터 나온다.

몇 개의 이유는 이미 밝혀졌다. 일을 해야 할 시간보다도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업무가 많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분석하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많은 중요한 업무가 나온다. 경영자의 시간을 분석해 보면 꼭 해야 할 업무에 쪼갤 수 있는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아무리 시간을 관리하려고 해도 그의 시간 반 이상은 여전히 그 자신의 시간이 아니다. 시간은 항상 적자이다.

공헌에 초점을 맞추면 맞출수록 모아진 시간이 필요해진다. 단순히 바쁜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 성과를 올리는 데 힘을 집중할수록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말 생산적인 반나절, 또는 2주간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엄격한 자기 관리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동의 결의가 필요하다.

더욱이 강점을 만들려 하면, 인간의 강점을 중요한 기회에 집중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 이외에 성과를 올리는 방법은 없다. 두 개는 커녕 하나의 일만이라도 훌륭하게 처리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집중이 필요하다.

# 24

도리어 어떤 성과도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훨씬 열심히 일하는 경우가 있다.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사람은 우선 첫째로, 하나의 업무에 필요한 시간을 과소평가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 되어 나가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무작정 잘 되어 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 항상 발생한다. 게다가 그러한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은 거의 항상 유쾌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성과를 올리는 경영자는 실제로 필요한 시간 이상으로 시간의 여유를 갖는다.

둘째로, 일반 경영자, 즉 그다지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경영자는 급하게 서두른다. 그래서 오히려 늦고 만다. 그러나 성과를 올리는 경영자는 시간과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 천천히 사업을 진행시킨다.

셋째로, 일반 경영자는 동시에 몇 가지 일을 하려고 한다. 그 결과 손에 잡고 있는 일 어떤 것에도 필요한 뭉텅이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사업 중 어느 하나라도 문제에 부딪치면 모두가 멈추고 만다.

성과를 올리는 경영자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게다가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시간이나 정력, 조직 전체의 시간과 에너지를 한 번에 하나의 일에 집중한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먼저 할 수 있게 집중한다.

# 25

낡은 것의 계획적인 폐기야말로 새로운 것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가 아는 한 아이디어가 부족한 조직은 없다. 창조력도 문제시되지 않는다. 모처럼의 좋은 아이디어를 실현할 업무를 하고 있는 조직이 너무도 작은 데 문제가 있다. 모두가 어제의 일로 너무나 바쁘다. 하지만 모든 계획이나 활동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유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일을 폐기한다면, 가장 온건한 관료 조직조차도 놀라운 정도로 창조성을 회복할 것이다.

듀퐁은 제품이나 공정이 진부화되기 전에 스스로 그것을 폐기하여 세계의 대규모 화학품 메이커로서 특히 탁월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 이 회사는 인간이나 자원과 같은 귀중한 재료를 과거 방어를 위해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은, '마차용 가죽 채찍이라도 효율적으로 생산하면 시장이 있다', '이 회사의 토대를 만든 이 제품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다' 등과 같이 완전히 잘못된 이념하에서 경영을 하고 있다. 창조성 개발 세미나를 수강한다든지 신제품 부족에 대해 우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그와 같은 기업이다. 이에 반해 듀퐁은 신제품을 개발해 판매하기에 바쁘고, 그와 같은 세미나에 사람을 보낸다든지 우는 소리를 늘어 놓을 여유가 없다.

새롭고 생산적인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일을 폐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1825년경에 만약 미국에 운송을 관할하는 관청이 존재했다면, 오늘에 이르기까지 말의 재훈련을 위한 기묘한 연구 계획과 함께 방대한 국가 예산으로 뒷받침되는 국유 역마차가 존재하고 있을 것은 거의 분명하다.

# 26

과학자에 관한 분석 대부분은 -- 아인슈타인이나 닐스 보어, 막스 프랭크 등의 천재는 별도로 하고 -- 적어도 과학적인 업적은 연구 능력보다도 기회를 추구하는 능력에 좌우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문제의 도전에 응하지 않고 쉽게 성공할 듯한 일을 선택하면 큰 성과를 올릴 수 없다. 광대한 주석의 집합을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자신의 이름이 붙은 법칙이나 사상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큰 업적을 남기는 사람은 기회를 중심으로 연구의 최우선 순위를 결정하고 다른 요소는 결정 요인이 아닌 제약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경영의 세계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는 기업은 기존의 제품 라인에서 신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라 기술이나 사업에서 혁신을 지향하는 기업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작지만 새로운 것이건, 크고 새로운 것이건, 위험하고 곤란하고 불확실함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어제의 균형 회복보다 기회를 성과로 전환시키는 쪽이 훨씬 생산적이다.

# 27

1933년 대통령에 취임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했던 행동이다. 그는 선거 운동 중 경기 회복을 위한 경제 정책을 검토하고 있었다. 1933년 당시의 경제 회복책은 물론 보수적인 재정 정책과 균형 예산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취임식 직전의 뱅크 홀리데이(일요일 이외의 은행 휴업일)에 경제가 붕괴했다.

루스벨트가 예정하고 있던 경제 정책은 경제적으로는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환자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그는 즉시 경제적인 목표를 정치적인 목표로 바꾸었다. 회복에서 개혁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새로운 경계 조건은 정치적인 역학이었다. 이는 자동적으로 경제 정책을 보수에서 혁신으로 완전히 변화시켜야 함을 의미했다. 경계 조건이 변화한 것이다. 루스벨트는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책이라도 폐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거의 직관적으로 알아낸 훌륭한 의사 결정자였다.

# 28

의사 결정이 충족시켜야 할 요건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그 의사 결정의 목적은 무엇인가', '달성해야 할 최저한의 목표는 무엇인가', '만족시켜야 할 요건은 무엇인가'를 명백하게 하는 것이다.

과학세계에서 이것은 '경계 조건'이라고 알려져 있다. 의사 결정이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이 경계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즉, 의사 결정은 목적에 알맞게 내려야 된다.

경계 조건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할수록 의사 결정은 성과를 올리게 되고 그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거꾸로 아무리 탁월한 의사 결정인 것 같아도 경계 조건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성과를 올릴 수 없다. 경계 조건은 보통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최저한의 것이 무엇인지를 물음으로써 분명해질 수 있다.

1922년 GM의 최고 경영자였던 슬론도 아마 사업부 책임자로부터 권한을 뺏음으로써 필요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자문해 보았을 것이다. 그의 답은 명확히 '아니오'였다. 그가 가진 문제의 경계 조건은 사업부 책임자들이 권한과 책임을 갖기를 요구했다. 이것은 기업의 통일성이나 중앙 통제와 똑같이 필요한 것이었다. 슬론의 경계 조건은 개개 인간 관계의 문제가 아닌, 조건 구조의 문제로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필요에 대응했기 때문에 슬론의 해결책은 지속될 수 있었다.

알맞은 경계 조건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지적인 사람들은 경계 조건을 반드시 일치시키지 않는다... 옳은 경계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결정은 부적절하고 성과를 올릴 수 없다. 그와 같은 의사 결정은 잘못된 경계 조건을 만족시키는 의사 결정보다 훨씬 더 나쁠지 모른다.

물론 제대로 경계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의사 결정도, 잘못된 경계 조건을 만족시키는 의사 결정도 틀린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경계 조건을 만족시키는 의사 결정이라면 구제할 수 있다. 하여튼 어느 정도 성과는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족시켜야 할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는 의사 결정은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킬 뿐이다. 한 번 내린 의사 결정을 언제 폐기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도 경계 조건을 명확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29

경계 조건의 명확한 이해는 가장 위험한 의사 결정, 즉 만에 하나 상황이 나쁜 경우가 생기지 않으면 잘 수행될지 모르는 의사 결정을 식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런 종류의 의사 결정은 항상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의사 결정이 만족시켜야 할 경계 조건을 자세하게 검토하면 항상 모순이 발견된다. 그러나 의사 결정의 성공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전망은 극히 희박하다. 기적이 곤란한 점은 드물게밖에 일어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전형적인 예는 케네디가 1961년에 내린 피그만 침공 의사 결정이다. 만족시켜야 할 환경 조건의 하나는 카스트로를 타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또 하나 만족시켜야 할 환경 조건이 있었다. 미군이 다른 공화국에 내정 간섭을 하는 듯이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제2의 경계 조건은 너무도 우스운 것이어서 그 침공을 쿠바 사람들의 자발적인 봉기로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누구 한 사람 없을 거라는 사실을 일단 제쳐 둔다. 어쨌든 당시 정책 당국은 불개입 원칙을 환경 조건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카스트로 타도와 쿠바인 봉기라는 그럴 듯하게 보이는 두 개의 환경 조건은, 쿠바인 게릴라의 피그만 상륙 후 즉시 쿠바 전 섬에 걸쳐 '타도 카스트로'의 무장 봉기가 일어나고, 또한 그것이 쿠바군을 마비 상태에 빠뜨렸을 때만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사태는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경찰 국가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계획은 폐기해야 되는가, 페기할 수 없다면 미군에 의한 전면 지원이라는 계획으로 변경해야 하는가, 어느 쪽인가 결정해야 했다.

이 오류는 케네디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전문가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오류의 원인은 의사 결정이 충족시켜야 할 환경 조건을 충분하게 검토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기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의 환경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의사 결정은 기적을 바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그러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사실에 기초해 환경 조건이 명확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사실의 해석에 기초한다. 즉, 결정은 위험을 수반한 판단이다. 누구나 잘못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쉽다. 사실 어떤 사람도 때로는 틀린 의사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 환경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의사 결정은 내릴 필요가 없다.

# 30

케네디 정부 정책이 국내 정치건 외교건 거의 실패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우수한 각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케네디 정권은 쿠바의 미사일 위기 대처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 밖의 문제는 거의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주요한 원인은 각료들이 실리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있었다. 즉, 원칙이나 방침을 책정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그때그때 원칙 없이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케네디 정권의 각료를 포함해 누구의 눈에도 당시 정책의 기초인 근본적인 전제, 즉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정책 중 기본적인 전제가 국제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점점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 이러한 잘못과는 반대로 케네디 정권의 유일하고 위대한 승리, 즉 쿠바의 미사일 위기에 대한 승리는 케네디 자신이 미사일 위기를 예외적인 도전으로 포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도전에 응함으로써 케네디의 지성과 용기라는 두 가지 자질이 대단히 효과적으로 발휘되었던 것이다.

# 31

그런데 의사 결정은 최초 단계부터 행동으로 이행할 것을 그 과정 속에 집어넣지 않으면 성과를 올리기 힘들다. 의사 결정의 실시가 구체적인 수순으로 누군가 특정한 사람의 업무와 책임이 되기까지 모든 의사 결정은 완료되지 않은 것이다. 그 단계까지는 단순히 좋은 의도일 뿐이다.

그것은 특히 기업의 경영 방침에서 자주 보이는 문제이다. 즉, 그런 경영 방침 내부에는 구체적인 행동을 위한 조치가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실시는 누구의 업무에도 없고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그 때문에 조직 내부의 인간은 그런 경영 방침을 최고 경영자가 전혀 이행할 마음이 없는 제목뿐인 계획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지극히 냉소적인 눈으로 볼 뿐이다.

의사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누가 이 의사 결정을 알아야 하는가', '어떤 행동이 필요한가', '누가 행동을 할 것인가', '행동해야 할 인간이 행동할 수 있기 위해서 그 행동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중 특히 처음과 마지막 물음은 자칫 잊어버리기 쉽다. 그리고 그 때문에 혹독한 결과를 맛볼 수도 있다.

OR 전문가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는 '누가 결정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의 중요함을 가르쳐 준다. 한 거대 산업용 기기 메이커가 아직 사용자의 생산 라인에서 사용되고 있던 어떤 표준적인 기계의 생산 중지를 결정했다. 다만 3년간만 생산 라인의 일부 갱신용으로 그 기계를 생산 판매하기로했다. 그런데 생산 중지 결정 후, 그 때까지 계속 감소하고 있던 사용자로부터의 주문이 쇄도했다.

하지만 '누가 결정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누구도 던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 메이커 구매 부문의 부품 구입 담당자에게는 이 결정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 기계의 매출에 대해 일정 비율로 구입해야 하는 부품이 담당자에게 지시되어 있었고, 그 지시도 변경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그 기계의 생산이 중지되었을 때 창고에는 그 기계를 8년 내지 10년간은 생산할 수 있는 부품이 쌓여 있었다. 그런 부품은 막대한 손실을 보면서 처분해야했다.

의사 결정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행동은 그 행동을 취할 사람의 능력에 맞아야 한다.

# 32

아이젠하워 장군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전임자였던 해리 S. 트루먼은 "불쌍한 아이크... 장군 시절에는 명령만 내리면 무엇이든 실행되지. 그러나 앞으로 이 커다란 사무실에서는 명령해도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대통령보다 장군이 권력을 더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군이 훨씬 이전부터 명령이라는 것은 거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운명임을 알아, 명령의 실행을 확인하기 위한 피드백을 조직화해 놓았기 때문이다.

군은 옛날부터 누구나 스스로 나가서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피드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통령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정보 원인 보고서는 보통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모든 국가의 군대에서 명령을 내린 장교는 스스로 나가서 그 실행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적어도 그들은 부관을 파견한다. 자신이 명령을 내린 부하로부터의 보고는 결코 신뢰할 수 없다. 부하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대장 스스로가 부대 식당에 나가서 병사용 식사를 시식함으로써 확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메뉴를 보고 식당을 운영할 수도 있 다. 그러나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스스로 병사용 식당에 나가 병사들과 똑같이 식사를 해 본다.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이 점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의사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현장으로부터 훨씬 멀리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나가서 자신의 눈으로 행동 현장을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한, 점점 현실로부터 유리되어 갈 것이다.

# 33

평가 측정 기준을 찾는 최선의 방법은 이미 서술했듯이 자신이 현장에서 피드백을 확인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의사 결정 전의 피드백이다.

예를 들어 인사 관리상의 문제는 대개의 경우 평균치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 데 있다. 사원 100명당의 평균 사고율, 사원 100명당 평균 결근율, 사원 100명당 평균 병가율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나가서 확인하는 경영자는 즉시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평균치는 보험 회사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인사 관리상의 의사 결정에는 의미가 없다. 아니, 커다란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사고의 대부분은 공장의 한두 군데에서 일어난다. 결근의 대부분은 하나의 부서에서 일어난다. 결근은 평균적으로 회사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원의 극히 일부분, 젊은 미혼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러므로 평균치 의존의 인사 정책은 기대할 성과를 낳기는커녕 사태를 악화시키고 만다.

# 34

어떤 일도 선택한 대안 전부를 검토하지 않으면 시야가 좁은 상태에 머무르고 만다. 성과를 올리는 경영자가 의사 결정 교과서에 나오는 원칙을 무시하고 의견 일치가 아닌 의견의 불일치나 상이함을 도출시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꼭 내려야 하는 중요한 의사 결정을 만장일치로 내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상반되는 의견의 충돌, 서로 다른 관점간의 대화, 서로 다른 판단 사이의 선택이 있어야 비로소 결정을 잘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의사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대 의견이 없을 때는 의사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GM의 최고 회의에서 슬론이 "그러면 이 결정에 관해서 의견이 완전히 일치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습니까?" 하고 묻자 모든 출석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끄집어 내고 이 결정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좀더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니, 다음 기회까지 검토를 연기할 것을 제안합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슬론은 직관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의견은 사실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게다가 절대로 결론에서 출발하여 그 결론을 뒷받침할 사실을 찾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옳은 의사 결정에는 적절한 의견 일치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큰 성과를 올렸던 미국 대통령은 모두 각각 의견 불일치를 만들기 위한 자기 나름의 방법을 갖고 있었다. 링컨, 테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헨리 트루먼, 그들 모두는 자기 나름의 방법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 결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의견 불일치를 만들고 있었다.

워싱턴 대통령이 대립이나 다툼을 싫어해 각료 내의 일치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러나 그조차도 중요한 점에 대해서는 해밀턴과 제퍼슨, 두 사람에게 의견을 들음으로써 필요한 의견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 35

의도적인 의견 불일치의 필요성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대통령은 아마 프랭클린 D. 루스벨트였을 것이다. 그는 중요한 문제가 나오면 측근 중 한 사람을 불러 "이것을 비밀리에 검토해 주시오" 하고 부탁했다. 실제로는 비밀리에 한 부탁도 즉시 워싱턴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고 만다는 것을 루스벨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 측근과 분명하게 생각이 다른 몇 사람을 불러 똑같이 은밀하게 같은 것을 부탁했다. 그 결과 그는 문제의 모든 측면이 검토되고 제시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특정인이 특정 결론의 포로가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루스벨트의 각료 중 유일한 전문 관리자였던 해럴드 익스 내무장관은 루스벨트의 이러한 방식이 바람직하지 못한 관리 방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일기에서 루스벨트의 무책임함, 경솔함, 표리부동한 언동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대통령의 임무가 관리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책 결정, 옳은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옳은 정책이나 의사 결정은 변호사가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든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법, 즉 반대 심문에 의해 얻을 수있는 것이다.

# 36

경영자의 자기 개발은 기업이나 정부 기관, 연구소, 병원, 군 등의 조직 발전에서 중심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조직이 성과를 올리기 위한 길이다. 성과를 향해 움직일 때 그들은 조직 전체의 성과 수준을 높인다.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목표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 결과 조직은 보다 업무를 충실히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일이 가능하게 되고 새로운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경영자가 성과를 올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조직 자신의 방향, 목표, 목적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그것은 조직 내 인간의 눈을 일상의 문제로부터 기회, 비전으로, 약점에 구애받는 것으로부터 강점의 발휘로 다시 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높은 능력과 의욕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직을 매력 있는 존재로 만들면서, 고도의 업무 처리와 공헌이 가능하도록 동기를 제공한다.

조직은 우수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성과를 올리는 것은 아니다. 조직은 조직의 수준이나 습관, 기풍에 의해 자기 개발을 동기 부여 하기 때문에 우수한 사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조직의 수준이나 문화, 기풍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스스로 성과를 올리는 경영자가 되고, 목적 의식을 갖고 체계적으로 초점을 자기 훈련에 맞추고 노력할 때만이 생겨날 수 있다. 현대 사회가 -- 존속하기 위해서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성과를 올리는 능력, 활동과 성과, 가치와 수준 그리고 자기 교열에 크게 의존한다.

오늘날 조직 활동은 경제적 분야, 사회적 분야를 넘어 교육, 보건, 지식 분야에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되었다. 게다가 조직 중 중요한 부분은 점점 지식 조직이되고있다. 이미 그러한 조직은 많은 지식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그리고 조직은 경영자로서 업무를 하는 사람들, 경영 전체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 각각의 지식과 업무의 성격으로부터 조직 전체의 활동이나 성과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의사 결정을 내리는 많은 사람들을 안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성과를 올리는 조직은 그렇게 많지 않다. 성과를 올리는 경영자보다도 적다. 물론 찬란히 빛나는 실례도 거기에 있다.

# 37

지식 노동자는 자신이 성과를 올리는 경영자가 됨으로써 그러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경영자의 성과를 올리는 능력에 의해서만 현대 사회는 두 가지의 욕구, 즉 개인으로부터 기회를 얻는다는 조직의 욕구와 스스로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서 조직을 사용한다는 개인의 욕구를 조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성과를 올리는 능력은 습득되어야만 한다.